グッドニュース誌(韓国語)
月刊「グッドニュース誌」は救いの福音と恵みの証を伝え、多くの人々をイエス・キリストの世界へ導いています。

[설교]다른 복음을 좇는 사람들   임민철(기쁜소식부산대연교회 목사)

投稿者
goodnews2
投稿日
2021-02-19 2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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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라디아서 1장 6~10절

자신이 판결하는가, 하나님의 판결을 받아들이는가?
사람들이 교회에 나가 설교를 듣고 신앙생활을 시작하면서 자연스럽게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려는 마음을 가집니다. 그러다가 말씀과 다른 삶을 살거나 잘못하면 ‘내가 죄를 지었구나. 이렇게 살면 안 되지.’ 하면서 자신을 고치려고 합니다. 그런데도 계속 죄를 짓고 자주 넘어지는 자신을 보면서 하나님 앞에 나아갈 때 거리낌이 생기고, 하나님께 죄를 용서해 달라고 간구하게 됩니다. 그렇게 해도 여전히 반복해서 죄를 짓는 자기 모습을 보며 하나님 앞에서 자신이 죄인이라고 생각합니다. 자신이 죄인인 것이 확실하고,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여깁니다.
여기서 사람들이 한 가지 중요한 점을 간과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사람이 죄를 지었을 때 누가 그 사람을 죄인으로 정합니까? 죄를 지은 사람이 스스로 정합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그가 재판을 받아서 재판장이 죄인이라고 판결해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판결을 받는 것도 그와 같습니다. 우리가 죄를 지었다고 죄인이 되는 것이 아니라, 그 죄에 대해 재판장이신 하나님의 판결을 받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죄인이라고 판결하실 때 죄인이 되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판단은 생각하지 않고 ‘내가 죄를 지었으니까 죄인이고, 그러니 회개해야 한다’고 스스로 판단하고, 그것을 믿고 삽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바르게 하려면 성경에 기록된 대로 하나님의 판단을 받아들여서 그 말씀을 믿고 달려가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의 인도를 받아 올바른 믿음의 삶을 살 수 있습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 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롬 3:23~24)
이 성경은 하나님의 판단을 기록한 판결문입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고, 그로 인해 하나님의 영광에 이를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우리를 의롭다고 하십니다. 하나님이 의롭다고 선고하셨으면 우리는 의로운 것입니다.
바울은 갈라디아 교회를 향하여 “이제 내가 사람들에게 좋게 하랴, 하나님께 좋게 하랴? 사람들에게 기쁨을 구하랴? 내가 지금까지 사람의 기쁨을 구하는 것이었더면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니라.”(갈 1:10)라고 했습니다. 바울은 하나님의 판단을 믿었기 때문에, 인간의 행위로가 아니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의롭게 되는 복음을 증거했습니다.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엡 2:3)
복음을 듣기 전에 우리는 다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자신의 판단을 믿고 살았습니다. 그런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진노를 받아야 할 사람임을 깨닫고 하나님의 판단을 받아들이면, 우리가 의롭게 되었다는 사실을 깨닫고 구원을 받습니다.

허물과 죄로 ‘죽은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은혜의 길
“너희의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엡 2:1)
성경은 우리가 허물과 죄로 죽어 있었다고 증거합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자신은 죽어 있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도리어 죽을까봐 두려워하고, 죽지 않으려고 애를 씁니다. 우리는 자신이 숨을 쉬고 활동하니까 살아 있다고 생각합니다. 자신이 살아서 죄를 짓고, 그 죄가 자기 신앙을 그르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향하여 ‘아니다. 너희는 허물과 죄로 죽었다. 너희는 죽었으니까 시체에서 악취가 나는 것처럼 너희에게서 죽은 냄새가 나올 뿐이다’라고 하시는데, 사람들은 성경과 다른 관념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언제 죽었습니까? 로마서는 이렇게 말합니다. “이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롬 5:12) 하나님이 지으신 아담이 하나님의 말씀을 버리고 사탄의 말을 따라 범죄했습니다. 그 아담 안에서 태어난 모든 사람은, 나면서부터 죄인으로 출생하여 죄를 지을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아담 안에서 죄인이 되었고, 모든 사람이 죄를 지어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습니다.
사람들은 자신이 죄인이라는 사실은 인정하면서도, 죄로 인하여 자신이 죽었다는 말씀은 인정하지 않습니다. 말씀대로 우리가 허물과 죄로 ‘죽은 사람’이라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생명입니다. 그 생명은 그리스도 안에 있기 때문에, 우리가 구원과 생명을 얻기 위해서는 예수님의 은혜를 입는 길 외에는 다른 길이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 구원의 길을 그리스도의 구속救贖의 은혜 안에 두셨습니다.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너희가 은혜로 구원을 얻은 것이라)”(엡 2:5)
우리가 받은 구원은 은혜로 말미암습니다.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치 못하게 함이니라.”(엡 2:8~9)
저는 소완도라는 작은 섬에서 태어나 어려서부터 교회에 다녔습니다. 배가 고파서 빵을 얻기 위해 다니다 보니 어느덧 예수님을 믿는 신앙인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나이가 들면서 점점 죄책감에 짓눌리기 시작했습니다. 교회에서 듣거나 성경에서 읽은 말씀들이 저를 자꾸 죄인으로 드러냈습니다. 그때마다 회개하고 죄에서 돌이키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죄는 늘어가고, 죄책감은 점점 무뎌졌습니다. 죄를 자백하고 용서를 비는 나 자신도 위선자라는 생각에 괴로웠습니다. ‘어떻게 하면 말씀대로 살 수 있을까?’라는 의문이 점점 커져 갔습니다. 나 자신을 보면서 스스로의 판단을 믿고 신앙생활을 한 결과였습니다. 그렇게 지내던 저에게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의 판단이 마음에 임하면서 구원의 빛이 비취었습니다.
구원은 우리 수고나 노력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믿음으로 우리 마음에 받아들여 이루어진 것입니다. 그래서 누구든지 자신을 자랑하지 못합니다.

다른 복음 좇는 것을 이상히 여기노라
하나님은 이처럼 그리스도의 은혜로 우리를 부르셨는데 사람들이 그 은혜를 속히 떠나서 다른 복음을 좇는다고, 갈라디아서는 말합니다. “그리스도의 은혜로 너희를 부르신 이를 이같이 속히 떠나 다른 복음 좇는 것을 내가 이상히 여기노라.”(갈 1:6) 은혜에서 떠난 것이 바로 다른 복음이라는 것입니다. 은혜를 떠났다는 말은 무엇을 가리킵니까? 은혜의 반대는 ‘행위’입니다. 다시 말하면, 사람들이 율법의 행위로 의를 얻으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율법을 지켜서 의를 얻으려고 하는 사람들은 그리스도의 은혜로 구원받는 것과 정반대의 길, 복음과 다른 길, 복음을 대적하는 길로 가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은혜로 우리를 부르신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은 없습니다. 만약 있다면, 그것은 복음을 요란하게 만들려는 것입니다. 사탄이 우리 마음에 은혜의 복음이 서지 못하도록 속이는 것입니다. “다른 복음은 없나니 다만 어떤 사람들이 너희를 요란케 하여 그리스도의 복음을 변하려 함이라.”(갈 1:7) 그리스도의 은혜에서 떠난 것이 다른 복음이요, 그것은 그리스도의 복음을 변질시키려는 사탄의 계교라는 사실을 바울은 갈라디아 성도들에게 편지로 깨우쳐 주었습니다. 또한 은혜가 아닌 율법의 행위로 의를 얻으려고 하는 사람들에 대해 바울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무릇 율법 행위에 속한 자들은 저주 아래 있나니, 기록된바 누구든지 율법 책에 기록된대로 온갖 일을 항상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저주 아래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갈 3:10)
예수님을 만나 아무것도 얻지 못하고 돌아간 니고데모, 율법사 행위로 의를 얻으려고 하는 사람들은 예수님을 만나도 아무것도 얻지 못하고 돌아갔습니다. 요한복음 3장에서 유대 관원 니고데모가 밤에 예수님을 찾아왔을 때, 예수님이 그에게 거듭나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말씀을 듣고 니고데모가 “사람이 늙으면 어떻게 다시 태어날 수 있습니까? 모태에 두 번째 들어갔다가 날 수 있습니까?”라고 물었습니다.
예수님이 거듭나야 한다고 말씀하시면, 니고데모가 ‘그렇습니까? 그럼 예수님이 제가 거듭나도록 해주십시오.’ 이런 마음을 가져야 했습니다. 그 마음으로 예수님께 은혜를 구했다면 예수님이 그를 은혜로 거듭나게 해주셨을 것입니다. 그런데 니고데모는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자신이 판단했습니다. ‘다시 태어나야 한다고? 그럼 내가 모태에 다시 들어갔다 나와야 한다는 말인가?’ 영적으로 거듭나는 일에 대해, 자신이 무엇을 해서 그렇게 되어야 하는 것으로 받아들인 것입니다. 니고데모는 결국 아무것도 얻지 못하고 돌아갔습니다.
누가복음 10장에서는 어떤 율법사가 예수님에게 “내가 무엇을 해야 영생을 얻습니까?”라고 물었습니다. 영생은 그리스도의 은혜로 얻는 것인데 그는 자신이 무엇을 해서 얻으려고 했습니다. 자기를 구원하러 오신 예수님을 앞에 두고 “예수님, 내가 무엇을 해야 영생을 얻을 수 있습니까?”라고 물은 것입니다. 그는 율법사로서 하나님이 주신 계명을 알고 지키며 살았지만 아직 영생을 얻지 못했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 저는 영생을 얻지 못했습니다.”라고 말하고 예수님께 은혜를 구해야 했습니다.
예수님은 율법사에게 ‘율법에 뭐라고 기록되어 있고, 네가 어떻게 읽느냐?’고 물으셨습니다. 그러자 율법사가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힘을 다하고 뜻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라고 하였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예수님 그에게 “네 대답이 옳도다. 이를 행하라. 그러면 살리라.” 하셨습니다. 그러나 사람 가운데 마음과 목숨과 힘과 뜻을 다해서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는 사람도 없고,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할 수 있는 사람도 없습니다. 그런데도 율법사는 무엇을 해야 영생을 얻느냐고 물었습니다.
안타깝게도, 많은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은혜를 믿는 믿음을 가지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행위가 완벽해져서 의를 얻으려고 합니다. 행위가 완벽해지면 하나님 앞에서 온전한 사람이 될 거라고 착각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떠하뇨. 우리는 나으뇨? 결코 아니라.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다 죄 아래 있다고 우리가 이미 선언하였느니라. 기록한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다 치우쳐 한가지로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
(롬 3:9~12)
성경은 선을 행하는 사람이 하나도 없다고 이미 선언했습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율법의 행위로 의를 얻으려는 생각을 포기하지 않습니다. 그런 사람에 대해서 성경은 “율법 안에서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하는 너희는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지고 은혜에서 떨어진 자로다.”(갈 5:4)라고 말씀했습니다.

‘우리 길’과 ‘여호와의 길’
우리는 은혜가 아니면 하나님 앞에 결코 설 수 없습니다. 선을 행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는 예수님이 이루신 구속의 은혜를 믿음으로 의롭게 되는 길 외에 다른 길이 없습니다. 사람들 마음에 이 사실이 분명하지 않아서 사탄에게 계속 미혹되고 흔들립니다. “이제 내가 사람들에게 좋게 하랴, 하나님께 좋게 하랴? 사람들에게 기쁨을 구하랴? 내가 지금까지 사람의 기쁨을 구하는 것이었더면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니라.”(갈 1:10) 우리는 사람을 기쁘게 하고 사람을 위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은 하나님을 믿는 것입니다.
성경에는 ‘우리 길’과 ‘여호와의 길’ 두 길이 있습니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사 53:6)
우리 길은 어떤 길입니까? 다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간 것입니다. 우리 가운데 자기 마음대로 살지 않은 사람은 없습니다. 모두 각기 제 길로 갔다고 성경은 이미 선언했습니다.
에베소서에서는 이렇게 말씀합니다.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엡 2:3)
우리는 다 육체와 마음이 원하는 대로 사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우리 길과 다른 길을 말씀하셨습니다. 자기 길로 가는 우리의 죄악을 예수님에게 담당시키셨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에 기약대로 그리스도께서 경건치 않은 자를 위하여 죽으셨도다. …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롬 5:6~8)
예수님은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 죄인 되었을 때, 원수 되었을 때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셨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우리가 각기 자신의 길을 가고 있을 때 하나님은 우리 모두의 죄를 그리스도에게 담당시키셨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예수님이 우리 죄를 담당하실 때 우리가 그리스도와 합해졌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우리 죄를 위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실 때 우리도 함께 죽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부활하실 때 우리도 함께 부활해 함께 하늘에 오르는 은혜를 입었습니다.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너희가 은혜로 구원을 얻은 것이라),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엡 2:5~6)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믿음으로 의로워졌고, 온전함과 거룩함을 얻었습니다. 성경은 이 은혜 외에 다른 구원의 길이 없다는 진리를 분명하게 증거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