グッドニュース誌(韓国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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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하나님이 택하신 그릇   임민철(기쁜소식부산대연교회 목사)

投稿者
goodnews2
投稿日
2021-03-13 2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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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라디아서 1장 12~24절

 

하나님은 당신의 계획을 따라 바울을 택하시고, 그를 인도하셔서 이방인의 사도로 세우셨습니다.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마음을 정확히 알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갈라디아 교회 성도들에게는 바울을 사도로 인정하지 않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갈라디아서를 비롯해 다른 서신에서도 자신이 사도가 된 것은 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았다는 사실을 언급했습니다.
“사람들에게서 난 것도 아니요 사람으로 말미암은 것도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와 및 죽은 자 가운데서 그리스도를 살리신 하나님 아버지로 말미암아 사도 된 바울은”(갈 1:1)
“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 된 바울은 에베소에 있는 성도들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신실한 자들에게 편지하노니.”(엡 1:1)
“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 된 바울과 형제 디모데는”(골 1:1)
바울은 자신이 전하는 복음 역시 사람에게 받거나 배운 것이 아니고 예수님의 계시로 말미암았다고 했습니다.
“이는 내가 사람에게서 받은 것도 아니요 배운 것도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로 말미암은 것이라.”(갈 1:12)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 관념과 판단이 다 무너진 사울
사도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를 알기 전에 율법을 지키는 유대교의 열렬한 신봉자였습니다. 바울은 길리기아 다소에서 태어나 예루살렘에서 자랐고, 가말리엘 문하에서 율법적인 가르침을 받았습니다. 바울은 사도행전 9장에서 구원받은 뒤, 후에 예수님을 전한다고 자신을 죽이려고 하는 유대인들 앞에서 자신이 과거에 어떻게 살았고 어떻게 변화되었는지를 사도행전 22장 3~8절에서 이렇게 이야기했습니다.
“나는 유대인으로 길리기아 다소에서 났고, 이 성에서 자라 가말리엘의 문하에서 우리 조상들의 율법의 엄한 교훈을 받았고, 오늘 너희 모든 사람처럼 하나님께 대하여 열심하는 자라. 내가 이 도를 핍박하여 사람을 죽이기까지 하고 남녀를 결박하여 옥에 넘겼노니, 이에 대제사장과 모든 장로들이 내 증인이라. 또 내가 저희에게서 다메섹 형제들에게 가는 공문을 받아가지고 거기 있는 자들도 결박하여 예루살렘으로 끌어다가 형벌 받게 하려고 가더니, 가는데 다메섹에 가까웠을 때에 오정쯤 되어 홀연히 하늘로서 큰 빛이 나를 둘러 비취매 내가 땅에 엎드러져 들으니 소리 있어 가로되 ‘사울아, 사울아, 네가 왜 나를 핍박하느냐?’ 하시거늘, 내가 대답하되 ‘주여, 뉘시니이까?’ 하니, 가라사대 ‘나는 네가 핍박하는 나사렛 예수라.’ 하시더라.”
사울(바울)은 율법적으로 엄격한 교육을 받았던 사람입니다. 그래서 그는 예수님을 믿고 예수님의 부활을 증거하는 사람들을 잡아 예루살렘으로 끌고 와서 형벌을 받게 하는 일을 했습니다. 사울에게는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 그로 말미암아 죄가 씻어진 복음을 전하는 구원받은 성도들이 눈엣가시 같은 존재들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들을 잡으러 다메섹까지 갔고, 가던 중에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홀연히 하늘에서 큰 빛이 그를 둘러 비추고, 그가 땅에 엎드러졌을 때 소리가 들렸습니다.
“사울아, 사울아, 네가 왜 나를 핍박하느냐?”
“주여, 뉘시니이까?”
“나는 네가 핍박하는 나사렛 예수라.”
이 일은 사울에게 엄청난 충격을 주었습니다. 그는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은 것과 돌로 된 무덤에 장사된 것을 분명히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죽어서 없어졌다고 믿은 예수님이 자기 앞에 나타난 것입니다. 그때까지 사울은 ‘죽은 사람이 어떻게 살아나? 그걸 사실이라고 믿는 인간들은 사회악이니 반드시 없애야 돼!’라고 생각했습니다. 사울이 볼 때 예수님의 부활을 증거하는 제자들과 성도들은, 상식과 이성에 전혀 맞지 않는 엉터리 이야기를 전하는 악한 존재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세상을 혼란스럽게 만들고 하나님을 모독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부활을 전하는 사람들을 잡아 형벌을 받게 하는 일에 앞장섰습니다.
그런 사울에게 “나는 네가 핍박하는 나사렛 예수라.” 하며 예수님이 나타나셨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전하는 사람들이 잘못된 것이 아니라 자신이 잘못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입니다. 그는 자신이 옳다고 확신했기에 진리를 전하는 사람들을 죽이고 감옥에 가두었습니다. 그런데 부활하신 예수님이 나타나 그가 가지고 있던 관념과 옳다고 생각한 판단을 다 무너뜨렸습니다. 이제 사울은 자신을 신뢰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내가 옳다는 것이 주님을 대적하고, 하나님의 사람들을 핍박하고, 복음을 가로막는 무서운 죄악이었구나. 내가 죽이려고 했던 사람들, 형벌을 받게 했던 그 사람들이 진리를 전하는 사람들이었구나. 내가 틀렸는데도 정확히 확인해 보지도 않고 그들을 핍박했구나. 그들의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들어보지도 않고 죽이고, 잡아서 옥에 가두었구나.’
사울은 자기 생각이 틀렸다는 사실과 자신을 신뢰하는 것이 얼마나 미련하고 악한지 처음으로 알았습니다. 자신이 하나님을 위한다는 생각이 도리어 주를 거스르고 대적하는 무서운 죄라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앞을 보지 못하게 된 사울은 사람들의 손에 이끌려 다메섹으로 갔고, 그곳 성도들에게 이끌림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은 이 사울을 열두 사도 가운데 하나로 세워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려는 뜻과 계획을 가지고 계셨습니다. 사람들은 이러한 하나님의 뜻과 계획을 몰랐습니다.

 

제자들이 뽑은 사도, 맛디아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신 뒤, 말씀하신 대로 3일 만에 부활하셨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40일 동안 이 땅에 계시다가 하늘로 올라가셨고, 그로부터 10일 뒤인 오순절에 성령이 내려왔습니다. 예수님이 승천하시고 성령이 임하기 전까지 10일 동안 예수님의 제자들은 무엇을 했습니까?
“사도와 같이 모이사 저희에게 분부하여 가라사대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 들은바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 날이 못 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 하셨느니라.”(행 1:4~5)
부활하신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니까 제자들은 예루살렘에서 기다리면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약속하신 성령을 기다린 것이 아니라, 열두 사도 가운데 가룟 유다로 인해 생긴 빈자리를 제비를 뽑아 채워 넣었습니다.
“저희가 두 사람을 천하니 하나는 바사바라고도 하고 별명은 유스도라고 하는 요셉이요, 하나는 맛디아라. 저희가 기도하여 가로되 ‘뭇 사람의 마음을 아시는 주여, 이 두 사람 중에 누가 주의 택하신 바 되어 봉사와 및 사도의 직무를 대신할 자를 보이시옵소서. 유다는 이를 버리옵고 제 곳으로 갔나이다.’ 하고 제비 뽑아 맛디아를 얻으니 저가 열한 사도의 수에 가입하니라.”(행 1:23~26)
제자들은 자신들이 맛디아를 사도로 뽑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세우신 사도는 맛디아가 아니었습니다.
사도행전 9장에, 사울이 예수님을 만난 뒤 다메섹에 있는 성도 아나니아가 사울을 찾아가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예수님이 환상 중에 아나니아를 부르셨습니다.
“아나니아야.”
“주여, 내가 여기 있나이다.”
“일어나 직가라 하는 거리로 가서 유다 집에서 다소 사람 사울이라 하는 자를 찾으라. 저가 기도하는 중이다. 저가 아나니아라 하는 사람이 들어와서 자기에게 안수하여 다시 보게 하는 것을 보았느니라.”
“주여, 이 사람에 대하여 내가 여러 사람에게 듣사온즉 그가 예루살렘에서 주의 성도에게 적지 않은 해를 끼쳤다 하더니, 여기서도 주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자를 결박할 권세를 대제사장들에게 받았나이다.”
“가라. 이 사람은 내 이름을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 앞에 전하기 위하여 택한 나의 그릇이라. 그가 내 이름을 위하여 해를 얼마나 받아야 할 것을 내가 그에게 보이리라.”
하나님은 가룟 유다를 대신할 사도를 이미 정해 놓으셨습니다. 그는 사울, 곧 바울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에서는 이미 바울을 열두 사도 가운데 하나로 세워 놓으셨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제자들은 예수님이 승천하시고 성령이 내려오기까지의 10일 동안 자신들이 의논하고 제비를 뽑아서 맛디아를 새로운 사도로 세웠습니다. 맛디아는 사람의 뜻에 의해 세워진 사도고, 바울은 하나님의 뜻에 의해 세워진 사도입니다.
이 시대에도 많은 목회자들이 세워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따라 세워지는 것이 아니라면 모두 사람의 뜻으로 세워진 것이고, 하나님의 일에 쓰임 받지 못할 것입니다. 초대교회에 있었던 하나님이 세우신 종에 대한 논쟁이 이 시대에도 반복되는 것은, 이것이 성경에 기록된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어느 때에나 사람들에게 인정받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이 세우신 사람이 하나님의 종이요, 사도입니다.

 

하나님의 계획과 섭리를 따라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이루어져야
바울은 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아 사도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이미 바울을 사도로 세워서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려고 계획하셨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맛디아를 뽑아서 사도의 직분을 행하게 했습니다.
“이는 내가 사람에게서 받은 것도 아니요, 배운 것도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로 말미암은 것이라.”(갈 1:12)
바울이 사도가 된 것도 하나님으로 말미암았고, 바울이 전하는 복음도 예수님의 계시로 말미암은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당시 사람들은 바울을 사도로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사람의 뜻을 따라 뽑은 맛디아를 사도로 인정해 열두 사도가 다 채워졌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교회들에 편지를 보낼 때마다 자신이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사도가 되었다는 사실을 계속 밝혔습니다.
“그러나 내 어머니의 태로부터 나를 택정하시고 은혜로 나를 부르신 이가 그 아들을 이방에 전하기 위하여 그를 내 속에 나타내시기를 기뻐하실 때에 내가 곧 혈육과 의논하지 아니하고”(갈 1:15~16)
우리 신앙이 사람의 뜻으로 말미암았으면, 우리 믿음이나 구원이 사람의 뜻으로 말미암았으면 하나님과는 상관이 없습니다. 구원도, 믿음도 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의지로, 하나님의 계획으로, 하나님의 섭리를 따라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이루어지는 것이 참된 구원이고, 참된 신앙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고 구원받았다고 하면서도 사람의 뜻을 따르고 있습니다.

‘사람이 얼마나 잘했느냐? 사람이 무엇을 했느냐? 사람이 어떻게 하느냐?’ 이런 것을 가지고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고 대적합니다. 우리가 얼마나 성실하냐, 헌금을 얼마나 드리고 헌신과 봉사를 얼마나 했느냐, 이런 것이 하나님의 뜻을 따라서 사는 것이 아닙니다. 설령 헌금을 조금 못 드리고 기도를 조금 못 하고 하나님 앞에서 성실하지 못했다 해도,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여 무엇을 하셨고 우리를 향하여 어떤 뜻을 가지고 계시며 우리를 어떻게 세우셨는지 정확히 알면 믿음을 갖기에 부족함이 없습니다.

 

사도 바울이 하나님이 택하신 그릇이었지만 맛디아 까닭에
초대교회 시대에 바울을 사도로 인정해 주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바울은 성도들을 핍박하다가 예수님을 만나 변화되어 복음을 전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전에는 예수님의 부활을 전하는 사람들을 옥에 가두고 핍박했지만 이제 누구보다 복음을 사랑하고 힘있게 복음을 전하는 사람이 되었는데, 맛디아가 사도로 서 있어서 사람들은 바울을 사도로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주께서 가라사대, 가라. 이 사람은 내 이름을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 앞에 전하기 위하여 택한 나의 그릇이라.”(행 9:15)
하나님의 뜻에는 바울이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 택한 그릇이었지만 사람들의 생각은 달랐습니다.
“아나니아가 대답하되 ‘주여, 이 사람에 대하여 내가 여러 사람에게 듣사온즉 그가 예루살렘에서 주의 성도에게 적지 않은 해를 끼쳤다 하더니 여기서도 주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자를 결박할 권세를 대제사장들에게 받았나이다.’ 하거늘”(행 9:13~14)
사람들의 눈에는 바울이 복음의 훼방자요, 핍박자요, 포행자였습니다. 같은 사람이지만 하나님이 보시는 것과 사람이 보는 것은 너무 다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의 뜻에서 난 것들이 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은 것들을 거스르고 대적합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이 이에 대해 잘 모릅니다.
신앙생활을 하면서 하나님의 뜻을 모르고 사람의 뜻을 가지고 있으면 하나님을 거스르고 대적하는 사람이 됩니다. 신앙은 사람의 뜻으로 되지 않고 하나님의 뜻으로 됩니다. 이 사실이 우리 마음에 정확히 세워지지 않으면 하나님과 마음을 결코 합할 수 없습니다. 그러면 올바른 신앙이 형성되지 않습니다.
바울은 하나님의 뜻으로 사도가 되었고, 갈라디아서 1장 뒷부분에서 자신이 사람이 아닌 하나님의 뜻을 좇아 행한 바를 이야기했습니다. 다메섹에서 먼저 사도 된 이들을 만나려고 예루살렘으로 가지 않고 아라비아로 갔다가 다시 다메섹으로 돌아갔고, 그 후 3년 만에 예루살렘에 가서 베드로를 만나 15일을 머문 뒤 수리아와 길리기아 지방으로 갔다고 했습니다. 길리기아 지방은 바울의 고향인 다소가 있는 곳으로, 바울을 아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그곳에서 바울이 예수님의 부활과 주님이 십자가에서 이루신 구속을 전했습니다.
“다만 우리를 핍박하던 자가 전에 잔해하던 그 믿음을 지금 전한다 함을 듣고 나로 말미암아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니라.”(갈 1:23~24)
바울은 누구보다 마음으로 유대교를 따랐던 사람으로, 예수님이 부활했다고 전하는 사람들을 죽이고 감옥에 가두는 일을 했습니다. 그랬던 그가 이제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많은 성도들이 그 변화에 놀라워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신앙은 사람의 뜻으로 말미암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습니다. 우리가 사람의 뜻을 따라 사는 삶에서 돌이켜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 때 하나님이 우리에게 은혜를 베풀고 능력으로 역사하십니다.